바라봄

다만 한 가지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눈이 멀었다가, 지금은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024년 2월 7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한겨레 — 행선지 속인 채 공항으로, 유학생 ‘납치’ 출국 보도

한신, 그 시작을 기억합니다. 북간도에 캐나다연합교회와 함께 세운 은진중학교, 그곳에 김재준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강원용, 문익환, 문동환, 그리고 안병무가 자랐습니다. 캐나다가 보여준 파트너로서 선교, 우리에게 값없이 베푼 영향 때문일까요? 같은 삶의 태도가 김재준 선생에게도 흐릅니다. 선생이 월급 70환 중 22환을 남기고 나머지는 가난한 학생과 나눴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모두 압니다.

오늘 잠시 보유금을 뺐단 이유로 강제 출국당한 유학생들을 보고 우리 선생들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를 보담은건 캐나다연합교회만이 아닙니다. 우리 선생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주민이 되어 북에서 남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습니다. 또한 일본 아오야마 학원, 신학부와 미국 프린스턴, 그리고 웨스턴 신학교가 김재준 선생에게 품을 내주지 않았다면 기장, 그리고 한신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그때 우리와 같이 우리에게 우즈베키스탄의 김재준, 안병무, 문익환, 문동환이 자신과 자신의 나라를 위해 배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았던 환대와 달리 우리는 그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내쫓았습니다.

이러한 지점만 슬픈 게 아닙니다. 우리는 압니다. 이제 대학은 재정을 위해 무분별하게 유학생들을 수입합니다. 이는 마땅한 정책 하나 없이, 220만이 넘는 이주민을 인간 아닌 노동력 취급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한신이 어느 대학처럼 이탈 방지를 위해 평소 학생들의 여권을 압수해 놓지 않은 것에 만족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지 학생 그리고 교육은 나 몰라라 하는 세태를 우리가 쫓아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해방 이후, 오늘까지 우리는 민중의 삶을 기록하고 이를 신앙과 신학으로 풀어내는 움직임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한신을 통해 이러한 태도를 배웠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새로운 사상과 운동을 이끌지 못한다고 해서 슬프지 않습니다. 다만, 위와 같이 순순히 자본의 종이 된 모습을 고백하는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이 모양으로 어찌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설 수 있습니까? 이 꼴로 어찌 선생들의 얼굴을 뵐 수 있을까요?

김재준 선생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선포했습니다. 자연에 관심하는 오늘과 닿은 그의 선지자적 식견에 감탄합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말 못 하는 자연만 이웃 삼지요. 그 안에 유학생들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우리 곁에 이주민 그리고, 난민이 소속되지 않은 공동체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한신은 우리 학생들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사과하고 다시 모셔 와야 합니다. 또한 공동체원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있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도 안 됩니다. 당신들이 추모하기 거부했던 우리의 벗, 임보라 목사와 LGBTI 친구들에게도 사과해야 합니다. 더 이상 늦어선 안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로부터 사라져가는 자연이 가르쳐주듯, 우리 곁엔 아무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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